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함께 나눠요. ^^
집회를 인도하다보면 어떤 교회는 젊은이들과 1.5세 그리고 2세 아이들이 많이 참여하는것을 보게 됩니다.
저희 이전에도 훌륭한 찬양사역자들이 다녀갔기에 그들에게는 또 다른 기대감을 갖고 왔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지난 찬양팀과는 무엇이 다르고 얼마나 잘할까 라는 얼굴을 하고 집회 내내 참여하는
모습 또한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막상 집회를 시작하면 자신들이 좋아하고,기대하던 소위 요즈음 유행하는
찬양을 할 줄 기대했는데 찬송가를 부르게 되면 왠지 한편으로는 실망하는 눈치를 보이다가 집회를 마치면
거의 똑 같은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찬송가가 이렇게 좋은 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저희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사역을 시작한지도 어느 덧 9년 이라는 세월이 흘러갑니다.
미국에서 사역하며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각 교회 마다 찬양에 대한 수준이 다른 다는 것입니다.
일꾼이 많은 교회 들은 현재 불러지고 있는 찬양들을 많이 부르지만 그렇지 못한 교회는
아직도 한국교회의 90년대에 불렀던 찬양이나 그 이전 찬양들을 많이 부르고 있습니다.
저희들이야 미국 전 지역을 다니며 사역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교회에 가장 보편타당하게
무리 없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찬양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하던 중 찬송가가 가장 좋겠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집회 시간에 찬송가를 많이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사역은 반주 테잎이나 연주 위주로 하여
찬양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회중 중심으로 찬양을 함께 부르는 사역이기에 더더욱 예배시간에
함께 할 수 있는 찬양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찬송가를 부르면 부를 수록
찬송가에 대한 매력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찬송가를 연구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것이 거의 모든 찬송가의 마지막 절에는 천국에 대한 사모함의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늘 찬송을 부르면서 찬송가를 지은이처럼 저희들이나 함께 참여한 모든 성도들의 마음에
처음 그것을 지은이의 가슴에 있었던 천국을 향한 열정이 오늘날 다시금 새롭게 일어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젊은 사역자들을 만나거나 교회찬양팀에게 찬송가를 많이 부르라고 당부하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찬양은 유행이 아닙니다.
찬양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찬양에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찬양에는 위로와 회복이 있습니다.
찬양은 우리를 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찬양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안타까운 것은 요즈음 젊은 층에서 좋아하는 찬양의 많은 곡들의 가사를 살펴보면 자꾸 위로와 평안을
많이 주려하는 메시지가 많이 담겨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찬송과 기도는 우리의 신앙을 받혀주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낙심과 절망 속에 있다가도
찬양만 부르면 힘이 생기고 소망이 생겨야 합니다. 찬양을 통해 세상에 소망을 두기 보다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찬양 모습들을 보면 연주와 기교는 화려한데
그 안에 회개와 그리스도의 강한 용사로 세워지게 하는 부분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떠나갈 듯 뛰며 찬양하고 소리 지르지만 그 집회가 끝나고 얼마 후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모습은
변화되어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사람들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콘서트에 다녀온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화려한 음악을 들으시길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곡조가 맞지 않고
비록 음정과 박자가 다를지라도 자신이 드리는 찬양을 통해 변화 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세상을 살아가길 원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과거에 찬송을 부르며 살아갔던 믿음의 선배들의 모습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떠났어도 그들의 간절한 믿음의 고백이 담긴 찬송가는 부르는 오늘, 우리의 마음에
동일하게 성령의 역사를 통해 믿음의 사람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교회 안에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 대한 올 바른 이해와 그 곡을 지은 이들의 심정과 믿음의 고백들이
부르는 우리들 마음속에 불같이 일어나길 기도해 봅니다.
오종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