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표적을 행하시는 예수님

본문 : 요한복음
4: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4:44 친히 증거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4: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4: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50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5:1 그 후에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5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날은 안식일이니 16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요절 : 8절-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성경 말씀에 대한 자세는 말씀이 그리스도이심으로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 복음을 좀더 묵상해 보면 사도 요한은 이 말씀과 그리스도를 하나의 본질로 보고 그것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이에대한 성령의 지혜가 있는 이들에겐 요한 복음 만큼 쉽고, 은혜로운 말씀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만약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 요한복음은 한없이 어렵고, 복잡할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 임하신 성령께서 요한 복음으로 인한 예수님을 만나는 복이 임하기를 축복한다.

그렇다면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에서 우리는 쉽게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오늘 나는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축복의 이정표를 표적이라는 말로 잡았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시며 구원과, 풍성함의 복을 내리시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멀리있는 신하의 아들을 그저 말씀으로만 고치시는 표적을 보이시고,
베데스다 우물가의 38년 된 병자 하나를 역시 말씀으로 고치시는 표적을 보이신다.

여기에서도 사도 요한은 이 말씀과, 예수님과, 그의 일을 연결시켜 말씀하실 때 표적이라는 말을 쓴다.

여기서 이 표적에 대한 말을 좀더 알아보겠다.
우리가 표적이라고 쓰는 말의 성경의 용도는,
구약에서는 [오트]라는 말로 징조(창1:14), 증거(9:12), 표징(창17:11), 예표(사20:3)로 쓰여지며,
신약에서는 [쎄메이온]이라는 말로 성경에서는 표적 외에 징조(마24:3), 군호(마26:48), 이적(막13:22), 표(롬4:11)로도 표시된다.

여기서 사도 요한의 예수님의 능력행하심에 대한 그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성경에서는 이런 경우에는 능력 행하심, 예수님의 일하심, 예수님의 승리 등으로 나타낸다.
그래서 우리도 일반적으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은 예수님의 능력의 나타남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능력 얻어 우리도 예수님처럼 세상과, 죄와, 질병과, 음부의 세력을 이기고자 한다.
이런 표적과, 예수님의 능력 행함에 연관성에 대해 나는 오랜 동안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신앙 생활 중 적지 않은 예수 권세에 의한 기사와 이적이 있었다.
죽었던 자가 잠시지만 일어나고, 5년 이상 걷지 못하던 어린아이가 일어나 걸어 그 아이가 지금은 건강하게 자라고 있고,
눈먼자가 눈을 뜨고, 안수하면 사람들이 다 넘어가 주님의 임재를 맛보고, 병중에 죽음을 두려워 하던 중환자가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나고,
허약한 몸으로 매년 겨울 감기가 년례행사처럼 치뤘던 내가 그 추운나라 불가리아에서 불도 없이 살아도 4년 동안 감기한번 걸리지 않고,
이런 모든 것들이 오히려 나에게 혼란이 되었다.

그러면서 가끔씩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서 일어나는 일이 예수님의 능력인가? 예수님이 나를 통하여 행하신 표적인가?

이 개념이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표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한다.
그렇다. 그것은 능력이라기 보다는 표적이다.
즉 예수님께서 나와 사람들의 부족함을 보시고, 그를 일깨우시기 위한 예수님께서 이루신 표적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알아본 성경에서 쓰인 표적이라는 말이 능력이라기 보다는 어떤 것을 알려주기 위한 신호요, 표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표적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시기를 원하시는가?
표적은 먼저 예수님은 표적의 근원이시라는 것이다(4:43-46). 요한은 이것을 집중적으로 우리에게 선포한다.
다음은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표적의 근원자로 영접하라는 것이다(4:45).
그리고 예수님에게 구하라, 즉 기도하라는 것이다(4:47, 5:7)
그리고 그의 말씀을 믿고, 행하라는 메시지이다(4:50, 5:9)

그러면 그것을 믿는 우리에게 주님은 표적을 보여 주실 것이다.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의 구한 바가 이루어 질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멀리 있는 이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로 주님께 구하면 들어주실 것이고,
38년 병자 뿐만 아니라 그외의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마른 자들이 고침을 받을 것이다.

오늘날 누가 온전한 사람이 있는가?
누구는 소경, 누구는 절뚝발이, 누구는 혈기 마른자, 누구는 눈먼자 아니겠느가? 영적으로 육적으로....
아무리 엄청난 능력을 부여 받은 자라도 이 모든 사람들에게 능력으로 다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이에게 능력의 근원이요, 표적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소개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표적 다음에는 반드시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된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라시는 예수님의 심정을 사도 요한이 그의 민감한 성령의 감동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능력 행함을 표적으로 말하며,
우리의 능력쫒음의 삶보다는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럴때 우리는 능력이 없으나 능력 행하는 자를 부끄럽게 할 수 있고,
무식한 것 같으나 유식하고, 가난 한자 같으나 부하고,
나의 약한 것이 오히려 주님의 온전함을 들어 내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이다.
주여 이 깨달음을 주시고, 주여 이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이렇게 살고자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은 싫어하고, 핍박할 것임을 오늘 또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이런 삶은 세상의 원리에 너무 벗어나는 파라독스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 세상 법으로 우리를 핍박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베데스다, 즉 우리의 은혜의 집인 베데스다, 예수 그리스도를 버릴 수 없다.

그래서 히브리어의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 (House of Mercy)이라는 뜻이 있는 것이고,
그래서 베데스다 연못은 지상 아주 깊은 곳에서 감춰져 있던 것이다.
이제 그 베데스다가 예루살렘 지면 깊은 곳에 흙으로 덮혀 있다가 1888년에야 발굴된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 베데스다가 되어 우리에게 생명과, 치유의 표적을 더욱 적극적으로 행하실 것이다.
이것을 믿고, 기다리며 [아멘 예수여 오시옵소서]외친 사도 요한의 고백을 드려야 한다.

그때까진 우리는 능력을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사명을 따라 예수영광을 돌릴때,
표적의 장본인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여전한 방식으로 표적을 일으키실 것이다.
이전에 그랬던 것 처럼.....
그리하여 많은 택한 백성들이 우리를 통하여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예수께 돌아오며,
또 먼저 구원 받은 우리들은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고, 감사한 삶을 살 것이다.

이런 정리를 하면서 내게 떠나지 않던 표적과, 기적의 능력행함에 대한 혼란을 벗어나게 되었다.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이다.
오직 주께서 행하신다.
주여 행하시옵고, 영광 받으소서.


요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기도 :

주여 오늘도 많은 믿음의 백성들을 축복하소서.

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구세주가 되셔서 오직 예수로만 행복하게 하소서.

보이는 것들에 집착하지 않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예수님과, 그의 능력이 행하여 지는 것을 보고 믿고, 감사하게 하소서.

예수님을 온전히 알고, 인정하여 예수님과 가까이 하는 복을 누리게 하소서.

주여 우리와 함께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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