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로스 컬럼 - 오종민 목사 (둘로스 경배와 찬양 대표)
어제 우연히 한국의 대형교회가 일본에 가서 개최한 전도 집회 실황을 보게 되었습니다.
현란한 춤과, 연주, 그리고 유명 연예인들을 출연시켜 그들의 간증을 들려 주고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말씀을 전하시고, 결신자를 초청하며, 마지막 순서에 다시 연주자를 초청하여
연주하는 것으로 순서를 끝내는 집회였습니다.
TV에 비친 집회 장소에 모인 일본인들은 대부분 연세가 드신 분들이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그 집회실황을 보면서 만일 바울이나,베드로, 아니 아펜젤러나, 젊은 나이에
“예수 믿으세요". 라는 한 마디 말을 외치다 대동강변에서 죽은 토마스선교사가 그러한
집회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요, 피로 얼룩진 복음의 전파였습니다. 예수라는 그 한마디
때문에 목숨을 버려야 했고 주님을 믿는 다는 이유 하나로 가족이 몰살당하는 아픔 속에
오늘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누군가 이야기 했듯이
“병사는 죽어도 전쟁은 이겨야 하고
환난과 핍박과 순교가 온다 해도 예수는 증거 되어야한다". 는 각오로 우리가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세상은 우리에게 타협을 요구합니다. 고지식하게, 아니 융통성없이 예수를 믿지 말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복음을 증거 하라고 말합니다.
정말 이렇게 하면 복음이 증거 됩니까?
정말 이렇게 하면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질 수 있습니까?
성경 어느 곳을 찾아봐도 타협하면 복음이 더 잘 증거되어지고 믿는 자들이 늘어난 다는 말씀을
저는 찾아보질 못했습니다.
신앙은, 믿음 생활은 타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싸워 이겨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른 신앙생활에는 수고와, 핍박, 눈물, 억울함, 그리고 아픔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만 살다 끝나는 것이라면 어떻게 살든 무엇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집이 있고 만나 뵈어야 할 분이 있으며
우리 인생에 대한 분명한 결산이 있다는 것을 믿기에 오늘도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보려고 몸부림 치는 것이 아닙니까?.
복음을 증거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디처럼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면서 회개를 촉구하는 집회도 있는가 하면
음악을 통해 아름답게 전할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복음을 전하다는 명분아래 값비싼 쇼 장에서 펼져지는 식의
공연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곳에 얼마나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참여하여 결신한다고 하는 자들의 삶의 자세가 얼마나 심각하게
바뀌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라고 외쳤던 주님의 제자들의 외침이
오늘날 우리들의 외침이 되길 원합니다.
자신의 생명 보다는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져 영혼의 구원을 보겠다는 각오로 전할 때
주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고난 없이는 영광의 기쁨이 없고 피흘림 없이는 구원의 역사가 없음을
역사를 통해 다시금 깨닫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살지만 우리의 자세만큼은 아날로그 시대처럼 순수하게 그리고 우직하게 주님만 바라보며
복음을 전하며 나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세워지길 기도합니다.
오종민목사




